국립중앙박물관 중, 근세관 조선실에 전시된 내용 중
15세기 관련 내용입니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궐"로 불렸습니다.
그 동궐을 그린 동궐도의 모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실은 이런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실은 조선의 역사를 세기별로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고려를 이어 한반도에 등장한 조선은 고조선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국호를 "조선"이라 칭합니다.
15세기, 조선 초기에는 건국의 정당성과 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는데 집중합니다.
행정, 의례, 군사 권력을 중앙에 집중시켰고
법전, 의례서, 지리서, 역사서 등을 편찬합니다.
어좌의 모습입니다
다섯 봉우리의 산과 바다, 태양, 달 등을 그린 일월오봉도의 병풍이 있고
천장에 용이 그려져 있습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하늘의 뜻을 받아야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천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고
조선 초에도 별자리를 정리한 지도가 제작되었습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입니다
원나라 떄 제작된 세계 지도에
조선과 일본을 덧붙여 만든 것입니다.
동아시아에서 현재까지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세계 지도라고 합니다.
원나라 때의 지명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전도입니다
일본의 실제 위치와는 다른 곳에 표시되어 있으며
쓰시마 섬은 조선에 가깝게 위치해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 부분입니다
1~4번
칸의 4대 왕국의 수도
5번
알렉산드리아
6번
나일강
7번
빅토리아 호수
8번
사하라 사막
1474년에 발간된 국조오례의서례입니다.
다섯 가지 국가 의례 절차를 규정한 내용으로 통치 이념을 반영해 국가 의례를 정비했습니다.
오례는
길례(제사)
가례(경축)
빈례(외교)
군례(군사)
흉례(상장례)
를 지칭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입니다.
1481년에 편찬되었고
각 도의 지리와 풍속 등을 기록했습니다
동국통감입니다.
1485년 완성되었고 고대부터 조선까지의 역사를 담았습니다.
1485년 경국대전에 완성됩니다
경국대전을 육조의 업무를 기준으로 각 관서의 기능과 구조를 명시했습니다.
1443년 세종은 한글을 창제합니다
세계 문자 중 만든 사람과 반포 시기, 창제 원리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글자이비다.
자음은 발음 기관의 모양
모음은 하늘, 땅, 사람의 모양을 기반으로 만들었습니다
1434년 세종은 해시계 양구일부를 설치합니다.
조선최초의 동전인 조선통보입니다
조선통보 10푼의 무게는 1냥(약 40g)이었습니다
1427년 세종은 도량형을 통일합니다.
조선 전기에는 조, 용, 조 제도로 조세 제도가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조는 토지에 부과하여 쌀과 콩을 거두는 방식
용은 성인 남자의 노동력을 징발하는 방식
조는 고을에 따라 특산물을 거두는 제도입니다.
세종은 공평한 토지세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172,806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합니다
이 숫자는 당시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1444년 토지 비옥도와 풍흉에 따라 구분하는
전분6등제와 연분9등제를 시행했습니다.
전분 6등제는 토지 비옥도에 따라 세금을 달리한 제도입니다.
토지 1결당 면적을 기준으로
토지를 1~6등 토지로 분류했습니다.
1결은 10,000파이고 1파는 곡식 이삭 한 줌을 뜻합니다.
즉 1등 토지의 경우에는 1결을 생산하기 위해 9,084제곱미터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고
6등 토지의 경우에는 1결을 생산하기 위해 56,418제곱미터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토지의 생산량에 따라 세금을 매김으로서
공평하게 과세가 부과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연분 9등제는
매년 농사의 풍흉을 9등급으로 나누어 세금의 양을 다르게 책정했습니다
동아시아 국제 질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조선은 태종 때부터 정기적으로 사신을 파견하고 무역을 했습니ㅏㄷ.
명나라로 떠난 사행단은 70~250명 규모로
외교문제 해결과 조공품을 진상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육로로 갈 때는 약 1,217km를 50~60일에 동안 이동했고
명의 수도가 남경에 있었을 때는 배를 타고 약 2,223km를 이동했습니다.
명나라 이후 청나라 때는 200~300명 정도의 사행단이 꾸려집니다.
조선은 일본과의 외교에서 강경책과 회유책을 병행했습니다.
임진왜란 후 기유약조를 체결하며 일본과의 국교를 재개하기도 합니다.
통신사는 조선과 일본 간의 신뢰를 되찾고자하는 목적에서 파견된 사절단입니다.
300~500명 정도가 참여했습니다.
일본은 조선 통신사를 접대하기 위해 숙소를 새로 짓고
조선 사신들이 선호하는 음식을 마련했습니다.
항해조천도 (1624년)
명으로의 사행길 여정을 그린 그림입니다.
임무를 마친 뒤 사행길 여정을 그려 첩으로 나눠가졌다고 합니다.
성종은 성리학과 윤리 규범을 중시하는 사람을 등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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