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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군산

[군산] 군산항쟁관



군산항쟁관은 고우당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군산항쟁관은 


일제강점기에 군산에서는 어떤 저항이 있었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군산항쟁관은 매주 월요일에 쉬고


근대역사박물관 휴무일에도 쉽니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입니다



특이하게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더라구요



군산항쟁관은 2층 건물로 


1층에는 군산 항쟁의 역사가 글로 정리되어 있고


2층에는 체험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1층 전시공간에는 군산에서의 항쟁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임피장터 3.1만세운동


옥구소작쟁의 항쟁


시마타니 농장 항쟁


임병찬 생가터


군산공립보통학교 학생 항쟁 운동지


군산 정미소거리 미선공 항쟁 운동지


옛 구암교회 3.5운동 근거지


옛 군산경찰서 앞 항쟁운동



순으로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1919년 3월 29일 임피시장 장날에 만세시위가 있었습니다.


임피 만세시위는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인 진장권에 의해 계획되었고


채만식, 김석종, 최한풍, 김홍렬, 황봉규 등과 함께


거사를 계획하고 태극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고


진장권 등은 끌려가면서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이에 시장 사람들이 호응해 만세시위가 계속되었습니다.




옥구소작쟁의는 1927년 8월부터 1월까지 총 7차례 전개되었습니다.


옥구 이엽사농장에서 일어난 소작쟁의인데요


당시 이엽사농장은 360만평의 논밭과 1,700여 명의 소작인을 두고


한 해 12,000석을 거두는 대농장이었습니다.



75%라는 고율의 소작료로 인해 발생한 쟁의로


군산경찰서의 탄압으로 농민들은 고통을 받았고 옥고를 치뤄야 했습니다.




시마타니농장은


일본인 시마타니가 1904년에 설립했습니다.


술의 원료인 쌀을 찾아온 시마타니는 개정면에 사무소를 두고


옥구, 김제 등에 370여 만평의 농지를 확보했습니다.



1933년에는 재해로 흉년이 들었음에도 풍작 때의 소작료를 그대로 거두면서


농민들의 원성을 샀고, 국보급 문화재도 수탈했습니다.



지금도 군산 개정면에는 이 때 당시 사용하던 금고형 건물이 남아있습니다.


농장 금고는 수집한 문화재와 소작료로 받은 현금 등을 보관하기 위해


사방 외벽은 콘크리트로 만들고 쇠창살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임병찬은 을사조약 이후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독립의군부를 조직 (1912년) 의병장을 맡았고


항일의병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군산공립보통학교에서 3.1만세운동이 이어졌습니다.


이곳은 일본인 교장의 관리와 경계가 업격하여 시위운동을 주도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학생 70여 명은 동맹을 하고 연서로 퇴학서류를 제출하며 항거하였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학부형을 소환, 압박하여 학교로 복귀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학생들은 1919년 3월 23일 밤 군산공립보통학교에 불을 지릅니다.


이 불로 학교는 완전히 소실되었고


주동자인 김수남은 징역 10년, 이남율은 7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하였습니다.




군산 정미소거리에서 일하던 노동자는 2,00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은 악조건에서 중노동을 했지만


임금은 갈수록 삭감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생존권 투쟁이 1924년부터 1934까지 계속됩니다.




군산 3.1만세운동은 3월 5일 구암교회를 중심으로 시작됩니다.


2월 26일 세브란스 의전에 재학중인


양명학교 출신 김병수가 독립선언서를 가져와 구암교회 박연세 장로에게 전달하였고


영명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합니다.


1919년 3월 5일 군중과 학생 등 1,000여 명이 군산경찰서 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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