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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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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한국근대문학관 - 근대계몽기 인천에 있는 한국근대문학관에 전시된 내용 중 근대계몽기 관련 내용입니다. 근대계몽기 시(가)는 전통 양식을 계승하면서 발전합니다. 형식적으로는 시조나 가사처럼 정해진 율격을 지쳤고 내용적으로는 계몽적 성격이 두드러졌습니다. 대표적으로 계몽가사, 창가, 신체시가 유행했습니다. 계몽가사는 전통 가사의 4.4조, 4음보의 리듬에 맞춰 새로운 내용을 담은 형태의 가사입니다. 대표작으로 이중원의 '동심가'(1896), 이필균의 '애국하는노래'(1896)이 있습니다. 창가는 서양행진곡, 찬송가, 일본창가 등의 영향을 받은 3음보 율격의 노래입니다. 대표적으로 최남선의 '경부철도노래'(1908), '한양노래'(1908)가 있습니다. 해애게서 소년에게 (1908년 창간호) 1894~1910 이 시기에는 신소설과 역사전..
[인천] 이민사 박물관 - 1930년대 이후 하와이 독립운동 인천 한국이민사 박물관 기획특별전 새롭게 보는 하와이 독립운동 자료전 1930년대 이후 하와이 독립운동 관련 내용입니다. 재미한족연합회와 주미외교위원부 하와이에서는 국민회와 동지회의 합작 운동이 전개되어 재미한족연합위원회와 주미외교위원부가 출범합니다. 그러나 재미한족연합회가 이승만의 독단적인 주미외교위원부 운영에 반대하면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됩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위원 (1942) 1944년 11월 2일 미국 우정국이 발행한 우표입니다. 당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침략을 당한 13개국의 저항활동을 기리고 독립운동을 격려하기 위해 제작된 우표중 하나입니다. 하와이 이민자의 상당수는 기독교 신자였고 교회는 한인 이민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합니다. 하와이한인교보 (1909년) 한인교회보 (1..
[인천] 이민사 박물관 - 1920년대 하와이 독립운동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특별전 '하와이독립운동자료전' 내용입니다. 1919-1922년 하와이 독립운동 1920-30년대 하와이 한인들은 평온한 시기를 보냅니다. 한인들의 경제 상황이 전반적으로 좋아져 자녀들을 위해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됩니다. 또한 비정치적인 민간부문의 활동이 활발해집니다. 1937년 일본의 진주만 폭격은 한국 독립운동에 좋은 영향을 줍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와 '주미외교위원부'가 설치되어 협력과 경쟁관계를 맺습니다. 워싱턴 군축회의 참가 실패와 상해 임시정부에서의 지도력 부재로 이승만은 탄핵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이에 이승만은 동지회를 설립하고 동지회의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동지식산회사 설립과 동지촌 건설운동을 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실패하고 반이승만 활동이 일..
[인천] 이민사박물관 - 1910년대 하와이 독립운동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특별전 새롭게 보는 하와이 독립운동 자료전 하와이 독립운동 연표 이번 전시에서는 하와이 한인 독립운동사를 시기별로 나누어 살펴보고 하와이 한인들의 삶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1903-1909년 하와이 한인사회가 형성됩니다. 하와이로 이주한 한인들은 각 농장 캠프를 중심으로 동회를 설립합니다. 이후 국력이 쇄약해지면서 하와이 한인사회는 민족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한인합성협회'를 창립하게됩니다. 하와이지역 동회 현황 초기 하와이 민족운동단체 최초의 합성협회 건물 (1907) 하와이 한인합성협회 총회장 임정수 (1907) 1909년 안창호 선생이 이끌던 공립협회와 하와이 합성협회가 통합해 국민회를 창설했습니다. 대한인국민회는 미주 한인 4천여 명을 대표하고 만주, 연해주 등을 포..
[인천] 이민사 박물관 - 미주 독립운동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미주 독립운동 관련 내용입니다. 서울에서 시작된 3.1독립운동은 중국과 러시아, 일본, 미주로 확산됩니다. 미주에서는 제1차 한인회의를 1919년 4월 14일 필라델피아에서 개최했고 이날 독립선언서가 낭독됩니다. 1919년에 제작된 영문 제목의 독립선언서 대한인국민회는 1910년 해외 한인 독립운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국민회입회증서 대한독립운동비 제1차 의연금 증서 (1919) 미주 지역 독립운동은 이승만, 안창호, 박용만 등 지도적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승만은 하와이를 근거지로 한인기독교회-한인기독학원-대한인동지회를 통해 외교적 노력을 하였고 안창호는 미주 본토에서 대한인국민회를 통해 민족 교육적 입장에서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박용만은 하와이를 근..
[인천] 이민사 박물관 - 남미 한인사 인천 이민사 박물관에 전시된 내용 중 남미 한인사와 관련된 전시 내용입니다. 브라질 최초의 한인 이민은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에 귀화한 재일 교포들이 브라질에 도착하면서 시작됩니다. 1956년에는 6.25전쟁 여파로 50명의 반공포로가 무국적으로 브라질에 도착하였습니다. 최초의 정착지 라마르케 농장에 세워진 아르헨티나 이민 기념비 도시 한인들의 최초 집거지인 아르헨티나 레따로 빈촌 아르헨티나 최초의 한인 이민자는 6.25전쟁으로 인한 반공포로들이었습니다. 1962년 국교가 수립되면서 아르헨티나로의 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남미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다음으로 파라과이에 많은 동포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첫 이민은 1965년부터 시작되었고 일종의 행상인 벤데 업을 개척합니다. 칠레 이민은 19..
[인천] 이민사 박물관 - 쿠바 한인사 한국이민사박물관 쿠바 한인사 멕시코 에네켄 농장의 한인들을 생존을 위해 1921년 쿠바로 재이민을 가게 됩니다. 이들은 마탄사스 농장 지역의 에네켄 농장에서 집단촌을 형성했습니다. 1942년 쿠바 아바나 한인들의 미국 독립 기념 경축 행진 모습입니다 카르데나스의 국민회 회관 모습입니다. 한인들이 이주한 이후 아바나 주재 일본 영사관은 한인들이 재외 국민으로 등록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이에 한인들은 등록을 거부하며 한인 대표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바오히가 조직 됩니다 (1921. 6.) 1945년경 쿠바에서 사용된 여권입니다. 1940년대에 사용된 국민회 회원증입니다.
[인천] 이민사 박물관 - 멕시코 한인사 이민사 박물관멕시코 한인사에 관한 전시내용입니다 멕시코 이민의 역사는 1905년부터 시작됩니다. 1,033명의 한인들이 인천 제물포를 거쳐 멕시코로 향합니다. 이들은 멕시코의 남부 살리나크루스 항구에 도착해 4년간 강제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멕시코로의 이민은 단 한차례로 끝났으며 현지인들과 결혼하고 한국어를 잊어감에 따라 민족적 정체성을 점차 잃어 갑니다. 멕시코에 열린 동포의 결혼식 모습입니다. 멕시코 탐피코에 세워진 한옥 건물의 모습니다. 한인 노동자들은 멕시코의 아시엔다 제도 하에서 일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한인들은 형식상 계약 노동을 하지만 실제로는 채무 노예나 다름없이 생활하게됩니다. 미주의 한인 단체인 국민회는 멕시코 동포들의 참상을 듣고 구제하기 위해 황사용과 방화중을 멕시코로 파견합니다...
[인천] 이민사박물관 - 개항과 이민 인천 월미도에 있는 이민사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월미전망대에 들렀다가 내려와서 이민사박물관에 갔는데요 전망대에서 천천히 걸어서 30분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이민사 박물관이라고 하네요 관람시간은 9시부터 18시까지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1월 1일, 공휴일 다음날이라고 합니다. 인천에 그리고 특히 월미도에 이민사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개항 당시 이곳을 통해서 대부분의 이민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전시가 시작되는 위치에는 이민사 연표가 있었습니다. 1860년 북경조약(중국과 러시아 간에 맺은 조약으로 연해지방을 러시아영토로 함) 이후 러시아는 연해주 개척을 위해 한인들의 입국을 허용합니다. 하와이로의 이민은 1902년 12월 처음으로 시작됩니다. 이..
[인천] 월미전망대 전망 월미도에 있는 월미전망대에서 본 모습입니다 인천항은 하나가 아니라 인천내항, 인천외항, 인천북항 등등이 있더라구요 월미전망대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이곳은 인천내항입니다. 멀리서 봐서 그런지 엄청나게 크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인천 내항의 전체 모습인데요 위치별로 취급되는 물품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멀리 자유공원의 모습, 차이나타운거리, 개항장의 모습이 보입니다. 옛 인천항 사진을 보면 이곳을 통해 배들이 드나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망대에서 어르신 두 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엿(?)들었는데 6.25 전쟁 때는 이곳에 큰 함선이 배치되어 원산까지 포격을 했다고 합니다 내항 가운데에 튀어나온 이곳은 제2부두로 철제와 잡화가 취급되는 부두라고합니다. 그 좌측은 제1..
[인천] 월미도 전망대 가는 길 월미공원에 갔다가 월미전망대로 향했습니다. 길을 잘 몰라서 그냥 큰길로 계속 걸아가봤습니다^^; 계속 가다보면 언젠간 정상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가는 길에 이런 작은 도서관도 있었습니다. 공중전화 부스 사이즈였는데 자유롭게 책을 빌려갈 수 있게 되어있더라구요. 여러 공원에 많이 보급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한적한 공원에서 책 읽기 좋은데_ 길을 따라가다보니 월미돈대 터가 있었습니다. 정확한 터는 아닌 것 같고 당시 형태로 재현해 둔 것 같았습니다. 월미돈대 터에서 서해쪽을 본 풍경입니다. 아침시간이라 빛이 좋았습니다. 햇살이 비친 초록색! 월미도 정상(?)으로 가는 길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로,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그런 느낌의 고요함 & 푸르름 & 선선함 월미전망대의 모습 월미도 ..
[인천] 월미공원 인천 월미공원 월미공원은 인천항, 인천역 (1호선), 인천 차이나타운거리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인천역에서 10분 정도 걸립니다. 월미공원에는 전통정원이 조성되어있는데요 정원..을 보기보다 그냥 자연을 느끼로 가는게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기대만큼, ‘정원’스럽게 잘 꾸며져 있지는 않아서요. 조용한 가을 아침의 풍경. 평일인데다가 아침이라 굉장히 조용했습니다. 몇몇 현장학습온 학생들이 있었구요. 가을가을가을 월미공원에서는 사슴과 토끼도 볼 수 있었습니다. 몰래(?) 먹이를 먹는 중_^^; 정원 한 가운데는 정자도 있구요. 이정도 높이와 경치_ 많이 높진 않습니다 정원 한 켠엔 국화가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국화향이 가득했던 이 공간 월미공원을 둘러보고 나서 월미도에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 거리 청일 조계지 쉼터입니다. 이 계단을 기준으로 왼쪽은 청국의 조계지, 오른쪽은 일본의 조계지였다고 합니다. 양국의 조계지는 1883년부터 1910년까지 30여 년간 지속됩니다. 좌측은 청나라, 우측은 일본의 양식을 따라 세워진 석등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청나라 양식의 석등입니다. 일본 양식의 석등입니다. 차이나타운 거리 화교중산중학교 바로 옆에 있는 삼국지 벽화거리입니다. 삼국지의 내용이 담긴 벽화가 그려져있습니다.
[인천] 동화마을, 자유공원 어느 날씨 좋은 가을날 인천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에서는 1호선 급행 열차를 타면 금방 도착하더라구요. (신도림 기준 40분 정도 소요) 동인천행 급행을 타고 동인천역에서 인천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갈아 타시면 됩니다. 이른 아침, 문 연 곳이 없을 것 같아서 동화마을 골목길을 찾아나섰습니다. 동화마을 골목길은 인천 차이나타운 거리와 이어져 있는데요 걷다보니 이런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동화마을길 이름 좋네요^^ 골목 곳곳에 이렇게 동화스러운 모습 색상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여긴 교회 주차장이었는데 이렇게 노아의 방주 느낌으로 외벽이 디자인 되어 있었습니다. 멀리 인천 내항의 모습도 보입니다 동화마을은 자유공원과도 맞닿아 있었는데요 산비탈이라서 조금 걷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자유공원으로 오르는 길에 담은..
[인천] 부평역사박물관 부평역사박물관은인천 부평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한국만화박물관과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함께 관람하기에 좋습니다. 관람시간은 9시부터 18시까지이고매주 월, 1월 1일, 설과 추석 당일에는 쉽니다.입장료는 없습니다. 부평역사실에는 부평지역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근현대 역사를 위주로 담고 있었습니다. 1907년부터 1909년까지 천일염전이 설치되었고생산된 소금은 대부분 일본으로 반출됩니다. 또한 산미증식계획의 일환으로 1923년 부평수리조합을 결성해 식량 생산을 늘리고늘어난 식량은 수탈해 갑니다. 1930년대에는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 발발했는데이러한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경인공업지대를 설정합니다. 1939년 착공된 부평조병창에서는소총과 총검, 포탄, 차량 등을 제작하였습니다. 또한 1944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