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246)
[강화] 덕진진 초지진에 이어서 도착한 곳은 덕진진 이곳도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된 곳으로 병자호란 이후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덕진진 성벽을 따라 가다보면 남장포대와 덕진돈대를 볼 수 있습니다. 포대는 포가 배치되어 있던 곳이고 돈대는 약간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한 평평한 곳으로 건물을 배치했다고 합니다. 남장포대의 모습 남장포대에는 대포 10문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은 신미양요 때 포격을 당하고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 해병대에 의해 점령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덕진돈대로 들어가는 문 덕진돈대는 신미양요 당시 미국함대와 격전을 벌인 곳으로 1977년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강화] 초지진 초지진은 조선 효종 7년인 1656년에 세워진 요새입니다. 1973년 복원 되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공사 중이어서 성벽만 조금 보다가 나왔습니다^^; 2018년 1월에 공사가 끝났으니 아마 지금은 초지진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화] 덕포진 덕포진 전시관을 나와 덕포진의 모습을 둘러봤습니다. 포대가 배치되어있던 곳입니다 강화도를 바라보는 쪽 강화도로 들어가는 초지대교입니다 포가 배치되어 있었던 곳으로 보입니다. 정면에 덕진진이 보입니다 이곳은 1980년 발굴 당시에 발견된 건물터입니다. 위치를 볼 때 포대를 지휘하고 불씨를 보관하던 장대로 추정됩니다.
[강화] 덕포진 전시관 김포 덕포진 전시관 덕포진은 강화도와 마주한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선조 때 만들어진 포대로 추정됩니다. 약 300여 명의 군사가 지킨 곳으로 1980년 발굴 작업을 통해 복원되었습니다. 덕포진에서는 총 15포대가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은 병인양요 (1855년), 신미양요(1871년)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합니다. 덕포진 북쪽에서는 물살이 쎈 '손돌목'이라는 곳이 보입니다. '손돌목'이라는 이름은 고려 시대 손돌에 얽힌 이야기에서 유래됩니다. 고려 고종은 몽고군을 피해 강화도로 이동합니다. 뱃길을 안내하던 손돌과 함께 이 부근을 지나고 있었는데 손돌이 뱃길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오해한 고종이 손돌을 죽입니다. 이후 잘못을 깨달은 고종은 넋을 위로하기 ..
[인천] 월미공원 전망대 야경 이날 오전에도 월미공원 전망대에 갔었는데 야경이 궁금해서 다시 한 번 올라갔습니다 바다 건너 보이는 곳은 영종도입니다. 인천항 갑문 인천항 인천항 갑문으로 배가 통과하는 모습입니다.
[인천] 월미도 월미도 말로만 듣던 월미도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의 정확한 명치은 월미문화의 거리입니다. 놀이기구와 음식점이 어우려져 있는데 평일 저녁에 가서 그런지 한적하더라구요 잠깐 월미문화의 거리를 둘러보고 인천항의 야경을 보러 다시 전망대로 올라갔습니다.
[인천] 홍예문 홍예문은 1908년에 세워졌습니다. 철도 건설을 담당한 일본 공병대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인근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수가 늘어나자 산 너머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헤 세워졌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그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사고 위험이 커보이긴했는데 아예 차량 통행을 막고 사람만 다니게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니다.
[인천] 내동교회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 성공회는 1890년 코프 주교와 랜디스가 인천에 도착하면서 시작됩니다. 현재의 건물은 누가병원으로 사용되던 곳에 세워졌습니다.
[인천] 내리교회 우리나라 감리교의 발상지 내리교회에 다녀왔습니다. 내리교회는 1885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건물은 1984년에 다시 증축된 것 같습니다.
[인천] 답동성당 인천개화거리를 둘러보고 근처에 있는 답동성당, 내리교회, 내동교회로 향했습니다. 걸어가기에는 조금 애매한 거리이긴한데 구경삼아 돌아다녔습니다. 근처에 신포국제시장이 있덜구요 시장에 있는 분식집에 들러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다시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답동성당 답동성당은 1889년에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의 성당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1937년 증축된 모습입니다.
[인천] 짜장면박물관 인천 짜장면박물관 화교역사와 짜장면에 대해 전시되어 있습니다. 1914~1949년 사용되었던 공화춘 회계장부 한국의 화교는 1882년 임오군란 당시 광동성 수사제독 오장경의 군대와 함께 들어온 상인 40여 명이 체류한 것에서 시작됩니다. 청나라는 1883년 말부터 영사 업무를 시작하였고 이 때부터 인천에 많은 중국인들이 건너옵니다. 현재 차이나타운이 위치하고 있는 중국 선린동과 북성동 일대는 개항기부터 화교들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청관'이라 불리며 상가와 요릿집들이 들어섭니다. 광복 후 정부가 화교의 경제권 확장을 제한하면서 위축되기도 했지만 1990년대 한중수교를 계기로 성장합니다. 화교들은 외국에 정착할 때 주로 음식점, 양복점, 이발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1890년대를 전..
[인천] 개항박물관 인천개항박물관 이 건물은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은 해관세와 한국에서 생산되는 금괴 및 사금의 매입업무를 대행합니다. 이후 예금과 대출 등 은행 고유의 업무를 담당하게됩니다. 이곳 개항박물관은 개항기 인천 지역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1888년 인천에는 대불호텔이 일본인 사업가에 의해 건립됩니다. 당시 교통이 불편했기 때문에 인천으로 통해 서울로 이동하는 외국인이 주로 이용했습니다. 1899년 9월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 투숙객이 줄어들었고 1918년 경 중국인에게 매각되어 중국음식점으로 활용됩니다. 1978년 철거되어 현재는 빈 터만 남아있습니다. 1918년 갑문 설치 이후 월미도 일대는 풍치지구로 지정되고 임해 유원지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1923년 월미도..
[인천] 근대건축전시관 인천 근대건축전시관의 전시 내용입니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은 본래 일본18은행 인천지점 건물이었습니다. 1890년 세워진 이곳은 18은행이 해외에 세운 최초의 지점이었습니다. 나가사키의 상인들은 상해에 수입된 영국 면직물을 수입해 그것을 한국에 팔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이들의 업무를 지원하고자 18은행 인천지점이 새워졌습니다. 개항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로 배를 대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곳에 선박을 정착시키기 위해 부두를 짓는 공사가 1884년 시작됩니다. 인천항 도크는 1906~1918년 사이에 설치됩니다. 인천항 도크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크이자 당시 동양에서 하나뿐인 도크였습니다. 일본 경도대학 문학부 지리학과가 소장하고 있는 1916년 제1..
[인천] 한중문화관 - 화교역사관 인천 한중문화관 화교역사관에 전시된 내용입니다. 화교사회는 1882년 조선과 청 간의 무역협정이 체결되면서 시작됩니다. 화교는 크게 세 부류로 구분됩니다. 화인은 현지의 국적을 취득해 중국 국적을 지니지 않은 집단 화교는 중국의 국적을 그대로 유지한 집단 화예는 자신을 현지교민사회의 일원으로 인식하지 않지만 문화적으로 중국으로부터 건너왔다고 생각하는 집단입니다. 한국 화교는 90% 이상이 산동성 출신입니다. 남성 위주의 이주 후 한국인과의 결혼을 통해 가족을 이룬 경우가 많았습니다. 1884년 4월 인천에 청국 조계지가 들어섭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한 뒤 중국조계지가 위축되었습니다. 1990년대 세계화의 추세와 한중 수교를 계기로 인천은 대중국 교류의 중심도시로 성장합니다.
[인천] 한중문화관 - 한중교류사 인천에 있는 한중문화관, 한중교류사 관련 전시 내용입니다. 한중 문화 교류는 기원전 3~4세기 경부터 시작됩니다. 이후 전쟁과 평화로운 교류를 통해 경제, 사회, 문화적 교류가 이어집니다. 냉전기에는 교류가 단절되기도 했지만 이후 중국이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하며 한중 교류가 급진전됩니다. 장보고는 819년 당나라의 장군이 되었다가 다시 귀국해 신라 왕실의 승인을 얻고 해적과 노예상을 소탕합니다. 장보고는 동북아시아의 해상권과 무역권을 제패해 한중교류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18세기에 등장한 북학파는 청나라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을 주장합니다.
[인천] 한중문화관 인천 차이나타운거리에 있는 한중문화관의 모습니다. 한중문화관 건물은 총 4층으로 1, 2층에 전시실이 있습니다. 연중무휴이고 9시부터 18시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관람료 한중문화관 우호도시홍보관에는 중국의 여러 도시로부터 기증받은 물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요녕성 영구시 산동성 청도시 시남구 산동성 치박시 박산구 내화예술로 만들어진 작품 수공유리조각공예품 산동성 제녕시 미산현 중국전통의상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습니다. 단체의 경우 미리 예약을 해야한다고 하네요. 청나라 황제, 황후의 의상 명나라 황제, 황후의 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