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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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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정상 이렇게 철조망이 둘러진 입구를 지나면 참성단에 도달합니다. 참성단에서 바라본 서해의 모습 멀리 영종도가 보입니다 서해를 등지고 본 강화도의 모습 참성단 이곳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이라고 전해집니다. 전국체육대회 성화는 이 참성단에서 채화되 대회장으로 운반됩니다. 김포, 일산 방향 석양을 다 보고 싶었지만 참성단 개방시간은 4시 반까지라서 중간에 내려와야 했습니다. 날씨가 너무 기가막혔던!! 산정상에서 만난 고양이 마이산 해발 472.1m
[강화] 마니산 능선 마니선 능선에서 바라본 서해 이쪽으로 30분 정도 더 걸어가면 정상에 도착합니다. 가는길 오른편엔 계속 이런 광경이.. 가다가 쉬었다가 가다가 쉬었다가 한 시간 정도 여유롭게 걸어 갔던 것 같습니다.
[강화] 마니산 올라가는 길 강화도 마니산(참성단) 올라가는 길 저는 올라갈 때는 단군로를 따라 올라가고 내려올 땐 계단로로 내려왔습니다. 계단로는 소요 시간이 짧지만, 풍경이 단조롭습니다. 등산로 입구에 있는 화장실 올라가는 길에는 화장실이 안보이더라구요 이곳을 꼭 이용하세요~ 처음에는 조금 완만한 포장도로가 나옵니다. 그리고 가다보면 계단로와 단군로로 나뉘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저는 단군로로 계속 걸어갔는데 여기도 계단이 많긴합니다..^^; 참성단이 1.3km남은 지점! 이제 능선에 도착했습니다. 멋진 경치를 구경하며 쉬엄쉬엄 올라갈 수 있는 코스입니다.
[강화] 광성보 광성보는 조선 효종 9년인 1658년에 설치된 해안수비 진지입니다. 신미양요 때 미국 군대와 전투를 벌인 곳으로 어재연 장군이 이곳에서 전사했습니다. 왼쪽 위쪽이 광성보의 입구입니다. 이곳은 1977년 보수되었다고 합니다. 손돌목 돈대의 모습입니다. 원래 이곳에는 무기고와 포좌 3개처가 있었다고 합니다. 신미양요 당시에는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진 곳이기도 합니다. 건너편이 김포, 앞에서 본 덕진진 방향인데요 물쌀이 매우 거센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광성보는 연중무휴로 이용 할 수 있고 이용 시간은 9시부터 18시까지입니다.
[강화] 덕진진 초지진에 이어서 도착한 곳은 덕진진 이곳도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된 곳으로 병자호란 이후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덕진진 성벽을 따라 가다보면 남장포대와 덕진돈대를 볼 수 있습니다. 포대는 포가 배치되어 있던 곳이고 돈대는 약간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한 평평한 곳으로 건물을 배치했다고 합니다. 남장포대의 모습 남장포대에는 대포 10문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은 신미양요 때 포격을 당하고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 해병대에 의해 점령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덕진돈대로 들어가는 문 덕진돈대는 신미양요 당시 미국함대와 격전을 벌인 곳으로 1977년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강화] 초지진 초지진은 조선 효종 7년인 1656년에 세워진 요새입니다. 1973년 복원 되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공사 중이어서 성벽만 조금 보다가 나왔습니다^^; 2018년 1월에 공사가 끝났으니 아마 지금은 초지진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화] 덕포진 덕포진 전시관을 나와 덕포진의 모습을 둘러봤습니다. 포대가 배치되어있던 곳입니다 강화도를 바라보는 쪽 강화도로 들어가는 초지대교입니다 포가 배치되어 있었던 곳으로 보입니다. 정면에 덕진진이 보입니다 이곳은 1980년 발굴 당시에 발견된 건물터입니다. 위치를 볼 때 포대를 지휘하고 불씨를 보관하던 장대로 추정됩니다.
[강화] 덕포진 전시관 김포 덕포진 전시관 덕포진은 강화도와 마주한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선조 때 만들어진 포대로 추정됩니다. 약 300여 명의 군사가 지킨 곳으로 1980년 발굴 작업을 통해 복원되었습니다. 덕포진에서는 총 15포대가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은 병인양요 (1855년), 신미양요(1871년)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합니다. 덕포진 북쪽에서는 물살이 쎈 '손돌목'이라는 곳이 보입니다. '손돌목'이라는 이름은 고려 시대 손돌에 얽힌 이야기에서 유래됩니다. 고려 고종은 몽고군을 피해 강화도로 이동합니다. 뱃길을 안내하던 손돌과 함께 이 부근을 지나고 있었는데 손돌이 뱃길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오해한 고종이 손돌을 죽입니다. 이후 잘못을 깨달은 고종은 넋을 위로하기 ..
[인천] 월미공원 전망대 야경 이날 오전에도 월미공원 전망대에 갔었는데 야경이 궁금해서 다시 한 번 올라갔습니다 바다 건너 보이는 곳은 영종도입니다. 인천항 갑문 인천항 인천항 갑문으로 배가 통과하는 모습입니다.
[인천] 월미도 월미도 말로만 듣던 월미도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의 정확한 명치은 월미문화의 거리입니다. 놀이기구와 음식점이 어우려져 있는데 평일 저녁에 가서 그런지 한적하더라구요 잠깐 월미문화의 거리를 둘러보고 인천항의 야경을 보러 다시 전망대로 올라갔습니다.
[인천] 홍예문 홍예문은 1908년에 세워졌습니다. 철도 건설을 담당한 일본 공병대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인근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수가 늘어나자 산 너머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헤 세워졌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그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사고 위험이 커보이긴했는데 아예 차량 통행을 막고 사람만 다니게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니다.
[인천] 내동교회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 성공회는 1890년 코프 주교와 랜디스가 인천에 도착하면서 시작됩니다. 현재의 건물은 누가병원으로 사용되던 곳에 세워졌습니다.
[인천] 내리교회 우리나라 감리교의 발상지 내리교회에 다녀왔습니다. 내리교회는 1885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건물은 1984년에 다시 증축된 것 같습니다.
[인천] 답동성당 인천개화거리를 둘러보고 근처에 있는 답동성당, 내리교회, 내동교회로 향했습니다. 걸어가기에는 조금 애매한 거리이긴한데 구경삼아 돌아다녔습니다. 근처에 신포국제시장이 있덜구요 시장에 있는 분식집에 들러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다시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답동성당 답동성당은 1889년에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의 성당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1937년 증축된 모습입니다.
[인천] 짜장면박물관 인천 짜장면박물관 화교역사와 짜장면에 대해 전시되어 있습니다. 1914~1949년 사용되었던 공화춘 회계장부 한국의 화교는 1882년 임오군란 당시 광동성 수사제독 오장경의 군대와 함께 들어온 상인 40여 명이 체류한 것에서 시작됩니다. 청나라는 1883년 말부터 영사 업무를 시작하였고 이 때부터 인천에 많은 중국인들이 건너옵니다. 현재 차이나타운이 위치하고 있는 중국 선린동과 북성동 일대는 개항기부터 화교들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청관'이라 불리며 상가와 요릿집들이 들어섭니다. 광복 후 정부가 화교의 경제권 확장을 제한하면서 위축되기도 했지만 1990년대 한중수교를 계기로 성장합니다. 화교들은 외국에 정착할 때 주로 음식점, 양복점, 이발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1890년대를 전..
[인천] 개항박물관 인천개항박물관 이 건물은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은 해관세와 한국에서 생산되는 금괴 및 사금의 매입업무를 대행합니다. 이후 예금과 대출 등 은행 고유의 업무를 담당하게됩니다. 이곳 개항박물관은 개항기 인천 지역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1888년 인천에는 대불호텔이 일본인 사업가에 의해 건립됩니다. 당시 교통이 불편했기 때문에 인천으로 통해 서울로 이동하는 외국인이 주로 이용했습니다. 1899년 9월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 투숙객이 줄어들었고 1918년 경 중국인에게 매각되어 중국음식점으로 활용됩니다. 1978년 철거되어 현재는 빈 터만 남아있습니다. 1918년 갑문 설치 이후 월미도 일대는 풍치지구로 지정되고 임해 유원지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1923년 월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