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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천

[부천] 부천유럽자기박물관



유럽자기박물관은


유럽자기와 가구 등 900여 점의 전시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흔히 볼 수 없는 각양각색의 자기 그릇들이 전시되어있어

색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유럽자기박물관은

부천종합운동장 한켠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부천의 다른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관람료는 1,000원이고

통합권을 이용할 경우 3,000원입니다.


9시부터 18시까지 관람 가능하고

1월 1일, 설날, 추석연휴, 월요일, 법정공휴일 다음날에 쉽니다.



18세기 초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의 자기가 유럽에 전파됩니다.


1709년 독일 마이센에서 처음으로 중국식 경질자기가 제작되었고

이후 유럽 각국으로 확산됩니다.


당시 백색자기는 금보다 귀한 것으로 간주되어

왕실과 특정 귀족사회에서만 소유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화려한 자기가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보면 훨씬 더 화려하고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 박물관에서 봐왔던 자기..에 비하면 훨씬 더 화려한 것 같습니다


비슷한 시기였는데 왜 그런 차이가 생긴걸까

잠깐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시기는 서양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기로

생산물이 급격하게 늘면서

더 이상 생존의 문제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많아졌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유해진 사람들이

먹고 사는 이 외의 문제,

더 고상하고 더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다보니

이러한 자기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한 세상과

먹고 사는 일이 어느정도는 해결된 세상에서

사는 삶

그리고 그 결과물이

이렇게 다름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럽 자기의 명가 네 곳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세브르


세브르는 루이 15세의 연인인 마담 퐁파두르의 지원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후 마이센과 함께 초기 유럽의 도자기산업을 이끌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국가의 지원아래 생산이 계속 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세브르에는 세계 최대의 도자기박물관이 있습니다.


영국의 로열우스터

1751년 영국 중심부의 작은마을 우스터에 설립된 우스터는

일상생활에 쓰이는 식기류를 만들었지만

이후 화려한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1789년 조지 3세로부터 로열의 칭호를 받으며 로열 우스터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로열우스터에서 만든 자기 그릇입니다.



덴마크의 로열코펜하겐

로열코펜하겐은 1775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왕실의 관리 하에 들어갔고 외국 왕실의 선물용 도자기를 주로 생산했습니다.

초기에는 독일의 도자기를 본 따 화려한 도자기를 생산했으나

이후 꽃과 풍경 등 자연 소재를 선택했습니다.



헝가리의 헤렌드

1826년에 설립된 헤렌드는 

헝가리의 헤렌드에 위치하며


예리한 칼로 섬세하게 도려내는 투각법과

점토를 실타래처럼 만들어 형태를 짜올라가는 망세공법이

특징입니다.





덴마크의 로열코펜하겐 제품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중국, 한국, 일본의 자기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해 왔습니다.


중국의 청화백자는

원나라시기에 완성되어 명나라시기에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16세기에는 포르투갈과

17세기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교역을 하면서

수출용 자기를 생산하기도 합니다.



조선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15세기 중엽 이후 본격적인 청화백자를 생산합니다. 


조선 자기공 이삼평을 통해 일본에서 백자가 제작됩니다.

청화백자와 오채자기가 주를 이루었으며 색상이 다채롭고 호화로운 편이었습니다.

17세기 중반부터 명나라의 적회식자기 제조방법을 배워

직물무늬에서 따온 회화적인 무늬를 표현했습니다.




박물관 한 켠에 

19세기 유럽의 다이닝룸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유럽의 자기는 독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독일 작센 공화국의 영주 아우구스트 대제는

일본 자기를 수집하면서

그와 똑같은 질의 자기를 생산해 내기 위해

연금술사 뵈트거를 감금합니다.


1709년 서양 최초의 경질자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고

1710년 섹소니 행정당국은 이 사실을 공식문서로 발표합니다.


1718년 마이센에서 도공으로 일하던

사무엘 스톨츠가 이 비법을 가지고 비엔나로 가면서

자기 만드는 기술은 유럽 전역에 퍼집니다.